티스토리 뷰
목차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2013)는 빙하기로 얼어붙은 지구를 배경으로 한 SF 영화로, 전 인류가 단 하나의 기차 안에서 생존을 이어가는 설정이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단순한 재난영화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날카로운 계급 구조 비판과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이 숨겨져 있습니다. 특히 겨울철이 되면 더욱 실감나는 이 영화는 폐쇄된 공간 속 긴장감과 봉준호 감독 특유의 사회적 메시지를 고스란히 담아낸 겨울 영화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세계관, 설국열차에서 꽃피다
『설국열차』는 봉준호 감독이 처음으로 할리우드 배우들과 협업하여 제작한 글로벌 프로젝트입니다. 프랑스 그래픽노블 『Le Transperceneige』를 원작으로 하되, 봉 감독은 이를 한국적인 시각과 세계적 문제의식으로 재해석했습니다. 이 작품은 “장르를 넘어서는 이야기”라는 그의 철학이 집약된 결과물로, 단순한 SF나 액션이 아닌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내포한 서사로 주목받았습니다.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의 공간, 즉 ‘기차’라는 긴 폐쇄된 무대 안에서 모든 사건이 전개됩니다. 그 안에서 발생하는 폭력, 저항, 이념 갈등 등은 현대 사회의 축소판처럼 느껴지며, 봉준호 감독 특유의 시선이 엿보입니다. 특히 대사 없이도 전개되는 장면 구성, 캐릭터들의 상징적인 행동은 관객에게 직관적인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설국열차는 이후 ‘기생충’, ‘옥자’ 등 봉준호 감독의 대표작들과 맥을 같이하며, 계급 문제와 자본의 불균형, 인간성과 생존 본능에 대한 그의 철학적 고민이 그대로 드러난 첫 번째 국제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습니다.
기차 속 계급 구조, 현실의 축소판
설국열차는 단 하나의 열차 안에서 살아남은 인류가 칸별로 나뉘어 살아간다는 설정을 통해, 현대 사회의 계급 구조를 은유적으로 표현합니다. 가장 후미칸에 위치한 사람들은 말 그대로 쓰레기처럼 취급받으며, 앞칸으로 갈수록 풍요롭고 권력을 지닌 사람들이 존재하죠. 이런 구조는 단지 극적인 장치가 아니라, 실제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을 그대로 반영한 것입니다. 영화는 커티스를 중심으로 한 하층민들이 혁명을 일으켜 점차 앞칸으로 나아가는 여정을 그리며, 각 칸마다 다른 ‘세계’가 존재함을 보여줍니다. 교육, 종교, 군사, 소비문화 등 다양한 사회 시스템이 각기 다른 칸에서 형성되어 있으며, 이 모두가 한 열차라는 공간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인간 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드러냅니다. 특히 중반 이후 밝혀지는 열차 운영 시스템과 윌포드의 존재는 통제와 질서라는 명목 하에 유지되는 계급 구조의 허구성을 폭로합니다. 영화는 단순히 혁명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 자체를 부수고 재정의하려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계급은 무너뜨릴 수 있는가? 시스템이 바뀌면 인간은 자유로워지는가? 봉준호는 그 답을 시청자에게 맡깁니다.
얼어붙은 지구, 폐쇄된 기차, 긴장감의 미학
『설국열차』는 단순히 차가운 배경의 영화가 아닙니다. 영화 전반에 걸쳐 지속되는 ‘추위’는 인간성의 냉각, 그리고 사회의 단절을 상징합니다. 기차 바깥은 영하 수백도의 죽음의 공간이고,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간은 인간을 이용하고, 버리며,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희생을 강요받습니다. 이 극한의 환경 설정은 시각적 긴장감뿐 아니라, 심리적인 압박감까지 더합니다. 폐쇄된 기차라는 공간은 이야기를 더욱 타이트하게 만들고, 관객은 끝없이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캐릭터들과 함께 달리며 심리적 압박을 공유하게 됩니다. 각 칸마다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 전투, 대화 장면은 단조로울 수 있는 배경 속에서도 긴장을 유지시켜 줍니다. 특히 봉준호 감독 특유의 블랙 코미디와 상징적 연출은 영화의 리듬감을 유지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러한 영화적 긴장감은 ‘겨울’이라는 계절과 절묘하게 맞물리며, 설국열차를 겨울철에 더욱 깊게 몰입할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들어 줍니다. 계절의 추위와 인간의 냉혹함이 맞물리는 지점에서, 설국열차는 단순한 SF 영화가 아니라 심리적 스릴러이자 사회 드라마로 탈바꿈합니다.
『설국열차』는 계급, 생존, 인간성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한정된 공간과 계절감 있는 배경 속에 담아낸 수작입니다. 봉준호 감독 특유의 연출력과 사회적 시선이 결합되어, 다시 봐도 새로운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로 손꼽힙니다. 이번 겨울, 설국열차에 다시 탑승해, 우리가 놓쳤던 질문들과 마주해보세요.